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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정보

저희 대청병원 장례식장은 검소하고 엄숙한 장례문화 정착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사지내는 법

기제사에 대하여

제례(祭禮)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데 대한 여러가지 예(禮)를 일컫는 말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없는 자손은 있을 수 없다.나를 낳아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신 선조에 대하여 인륜(人倫)의 도의(道義)로 정성껏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아무리 바쁜 생활에 쫓기는 현대인이지만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조상의 기일(忌日)만이라도 보은감사(報恩感謝)의 마음을 가지고 예를 지킴이 옳다고 본다.우리의 제례범절(祭禮凡節)이 그렇게 난해(難解)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은 그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제례를 등한시하고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를 저버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제사를 모실 때는 많은 음식과 제수를 차려 놓아야만 되는 것으로 착각들을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사고(思考)로 모든 기제사 봉행은 본인의 형편에 따라 정갈하게 진설, 정성껏 지내면 된다.기제(忌祭 : 忌日에 지내는 祭祀)의 봉사(奉祀)대상은 제주(祭主)로부터 五대조까지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풍속이었으나 옛날 권문명가(權門名家)들은 八대조봉사(奉祀)까지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사를 드리는 시간은 돌아가신 전날 새벽 一한 시경 조용한 때에 엄숙히 드리는 것이 좋다.제사는 보통 제주(祭主)의 가정에서 드리며, 대청이나 방 한 곳에 제상을 차린다. 그러나 특별한 지위나 사회적인 기제(忌祭)일 경우에는 다른 장소를 마련하여 행사(行祀)한다.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次子) 또는 차손(次孫)이 제사를 주관한다.상처(喪妻)를 한 경우에는 남편이나 그의 자손이 하고, 자손이 없이 상부(喪夫)한 경우는 아내가 제주가 된다.참사자(參祀者)는 고인의 직계 자손으로 하되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도 참석할 수 있다.부득이 참사할 수 없는 자손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한다.

제사의 종류

시제(時祭) : 철 따라 한해에 네 번 종묘(宗廟)에 지내던 제사였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고 있다.
다례(茶禮) :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ㆍ보름 생일에 간단히 낮에 지내는 제사이며 정월 초하루날의 연시제(年始祭)와 팔월 추석에 지내는 절사(節祀)가 있다.
기제(忌祭) :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로, 오늘날 제사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묘제(墓祭) : 시조(始祖)에서부터 모든 조상들의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대개 한식(寒食)이나 시월(十月)에 날짜를 정해지내고 있다.
이밖에도 천신(薦神=薦新)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철에 따라 새로 나온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과일 등을 사당에 올리던 것을 말한다.

제사지내는 순서

설위(設位)
참사자(參祀者)가 손을 씻은 다음 진설순서에 의해 제수를 진설하고 참사자가 배열해 선다.

취신위(就神位)
지방이나 사진을 교의에 모신다. 분향(焚香)강신(降神): 신위께서 강림(降臨)하시어 음식을 드시도록 청하는 뜻으로 제주(祭主)를 위시하여모든 참사자가 신위 앞에 선 다음 제주는 꿇어앉아 분향하고 잔이 차지않게 따른 술잔을 우집사(右執事 = 대개 제주의 子姪이함)로부터 받아서 모사에 세 번으로 나누어 부은 후에 빈 잔은 우집사에게 건네주고 일어나서 재배한다.

참신(參神)
참신은 강신을 마친 후에 제주 이하 일동이 일제히 신위를 향하여 재배한다. 신주(神主)를 모시고 올리는 제사인 경우에는 참신을 먼저 하고 지방(紙榜)인 경우에는 강신을 먼저 한다.

초헌(初獻)
제주는 강신 때와 같이 꿇어앉아 분향한 후 좌집사로 부터 받은 잔에 우집사가 술을 가득히 부어주면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모사에 조금씩 세번에 기울여 부은 뒤에 양손으로 받들어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이를 받들어 먼저 고위(考位)앞에 올린다. 다음으로 비위(쯼位)앞에 올리는 잔은 모사에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받아서 올리고 저를 고른 후에 재배한다.

독축(讀祝)
축문 읽는 것을 독축이라 하며 초헌 후에 일동이 꿇어앉으면 제주옆에 앉은 축관이 천천히 크게 축문을 읽는다. 다 읽고나면 일동은 기립하여 재배한다. 독축은 초헌에 한한다.

아헌(亞獻)
둘째번 잔을 올리는 것을 아헌이라 하며 주부[주부는 재배가 아닌 사배(四拜)]가 올리는 것이 관례이나 제주 다음의 근친자가 초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올릴 수도 있다.

종헌(終獻)
아헌자 다음가는 근친자가 끝잔으로 올리는 것을 종헌이라고 하는데, 종헌자는 잔을 받아서 초헌때와 같이 모사에 세번 기울였다가 올린다.

계반삽시(啓飯揷匙)
메 그릇 뚜껑을 열어 놓고 수저를 꽂는 것으로서 이때 수저 바닥이 동쪽(신위를 향해 선 제주의 오른편)으로 가게하여 꽂는다.

첨작(添酌)
초헌자가 신위 앞에 꿇어앉아 우집사가 새로운 술잔에 술을 조금 따라주면 받아서 좌집사에게 준다. 좌집사는 이것을 받아, 종헌자가 종헌때 모사에 기울였기 때문에 차지 않은 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첨작하고 재배한다. 첨작을 유식(侑食)이라고도 한다.

합문(闔門)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린 다음 수저로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고 저(著)를 고르고 난 후에 참사자 일동은 잠시 읍(揖)한 자세로 있다가 제주의 기침 소리에 따라서 고개를 든다.

계문(開門)
계문이란 문을 여는 것을 말하는데 제주는 문을 열기전에 우선 기침을 세 번하고 난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간다.

헌다(獻茶)
숭늉을 갱과 바꾸어 올린 다음 수저로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고 저(著)를 고르고 난 후에 참사자 일동은 잠시 읍(揖)한 자세로 있다가 제주의 기침 소리에 따라서 고개를 든다.

철시복반(撤匙復飯)
철시복반이란 숭늉그릇에 놓인 수저를 거둔 다음 메그릇에 뚜껑을 닫는 것을 말한다.

사신(辭神)
참사자 일동은 재배한 다음 신주는 본래의 사당으로 모시고 지방과 축문은 불사른다. 즉 신위와 작별을 뜻하는 것이다.

철상(撤床)
모든 제수를 물리는 것을 철상이라 하며 제수는 뒤쪽에서부터 물린다.

음복(飮福)
음복이란 조상께서 주시는 복된음식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제사가 끝나는대로 참사자와 가족이 모여 먹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또 이웃 어른들을 모셔다가 대접하기도 한다.

제사상 차리는 법

제사상 차리는 진설법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며 옛 학자들의 주장도 한결 같지 않다.다음에 예시한 진설도는 가장 일반화된 것이며 기본적인 제수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제사음식의 종류에 따라 당연히 변경될 수도 있지만 각 열은 통일성이 유지되게 지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제상 진설의 기본원칙

좌서우동(左西右東)
신위를 어느 쪽에 모셨든 영위를 모신 쪽이 北이되고 영위를 향해서 우측이 東이며 좌측이 西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과 고기(肉類)를 함께 진설할 때는 생선은 東, 고기는 西이다. 따라서 三탕을 쓸 때 어탕이 東, 육탕이 西, 계탕은 중앙에 놓게 된다.

이서위상(以西爲上)
신위를 향해서 좌측이 항상 상위가 된다. 지방을 붙일 때 考位(아버지)를 왼편 즉 西쪽에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 과실은 서쪽에 진설하는 가문도 있다. 따라서 홍동백서로 진설하는 가문은 대추가 가장 우측, 밤이 좌측으로 진설한다.

좌포우해(左脯右해)
포를 좌에, 식혜를 우에 놓는다.

생동숙서(生東熟西)
생것은 동쪽에, 익힌것은 서쪽으로 한다.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 밤, 감, 배 순으로 한다.

두동미서(頭東尾西)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놓는다.

좌반우갱(左飯右羹)
메는 왼쪽, 국은 오른쪽에 놓는다.
과실중 복숭아는 제사에 안쓰며 생선중에서 끝자가 치자로된 꽁치, 멸치,갈치,삼치등은 사용치 않는다.
짜거나 맵거나 현란한 색깔은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고춧가루와 마늘은 사용하지 않는다.
설에는 메(밥)대신 떡국을 놓으며 추석 때는 메 대신 송편을 놓아도 된다.
시저(수저)를 꽂을 때에는 패인 곳을 제주의 동쪽으로 메를 담은 그릇의 한 복판에 꽂는다.
두분을 모시는 양위 합체 때에는 메(밥)와 갱(국)과 수저을 각각 두벌씩 놓으면 된다.
남좌여우(男左女右)라 하여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에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참고로 조(대추)는 씨가 하나로 나라 임금을 뜻하고 율(밤)은 세톨로 삼 정승, 시(감, 곶감)는 여섯개로 육방관속,
이(배)는 여덟개로 八도 관찰사를 뜻 함으로 조율시이(棗栗枾梨)의 순서가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더 많다.

올바르게 절하는 법

남자

원래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옥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갓을 썼다. 그러나 요즘은 가능하다면 검정색 계통의 겉옷을 입고, 두루마기를 걸치면 좋을 것이다.

여자

3년상 안에는 소복을 하고, 기제사 때에는 옥색으로 된 천담복을 입고, 머리에는 낭자와 민족두리를 쓰고, 패물장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정한 차림새의 치마 저고리를 갖추는 정도면 될 것이다. 간혹 절하는 예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양쪽 손끝을 겹치지 않고, 좌우로 각기 떨어지게 벌린 채 절을 하는데, 이것은 최소한 동등하거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절을 받을 때, 답례로 하는 반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불경패례의 망발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양손을 가지런히 펴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손톱 부분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 위에 포개어지도록 살포시 올려놓는다. 그리고 양쪽 손의 엄지손가락 끝의 손톱끼리 마주 치도록 하여 손바닥을 가지런히 펼친 자세가 되어야 올바른 자세이다.

배려

신위를 향해서 좌측이 항상 상위가 된다. 지방을 붙일 때 考位(아버지)를 왼편 즉 西쪽에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지방쓰는 법

신위(神位)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紙榜)으로 대신한다.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쓰며 그 크기는 길이 23cm,폭 6cm 정도가 적당하다. 시제지방을 쓸 때는 몸을 청결하게 한다.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 하나 사후에는 考라하며 비()는 모와 같아 생전에는 母라 하고 사후에는 비()라 한다. 남자의 지방을 쓸 때 벼슬이 없으면 學生으로 쓰고 벼슬이 양천부원군(陽川府院郡)이라면 그 관직을 그대로 쓴다. 따라서 그 배위(配位ㆍ아내)도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쓴다. 여자의 경우 유인(孺人) 다음에는 본관과 성씨를 쓰고 아내의 제사인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되며 자식의 경우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주가 된다.만약 재취(再娶)로 인하여 지방이 삼위(三位)일 경우는 왼쪽에 남자의 지방을 약간 높게 붙이고 중간에 본비(本쯼)의 지방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인다.

조문예절

가까운 친지가 상을 다하였을 경우
가까운 친척 친지 가운데서 상을 당한 연락이 오면, 가급적 빨리 상가에 가서 상제를 도와 장의준비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상가에 가면 우선 상제들을 위로하고 장의 절차, 예산 관계 등을 상의하고 할 일을 서로 분담하여 책임감있게 수행해 준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이일 저일에 참견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복장을 바르게 하고 영위에 분향 재배하며, 상주에게 정중한 태도로 예절을 잊지 않도록해야 한다.

이웃이 상을 당하였을 경우
이웃에서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즉시 가서 우선 급한 일을 도와 주는 것이 도리이다.

조문객의 옷차림(남성)
검정색 양복이 원칙이다. 갑자기 통지를 받았거나 미처 검정색 양복이 준비되지 못한 경우 감색이나 회색도 실례가 되지않는다.
와이셔츠는 반드시 흰색으로 넥타이, 양말, 구두는 검정색으로 한다.

조문객의 옷차림(여성)
검정색 상의에 검정색 스커트를 입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주름치마는 폭이 넓어서 앉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아야 편리하다.
검정색 구두에 무늬가 없는 검정색 스타킹이 좋다.
그밖에 장갑이나 핸드백도 검정색으로 통일시키고, 또한 되도록 색채화장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문가는 시간
초상의 연락을 듣고 즉시 달려가서 도와 주어야 하는 처지가 아닌 사람은 상가에서 아직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안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성복을 끝내기를 기다려 문상하는 것이 예의이다.
스스럼 없는 사이라면 염습이나 입관을 마친때도 괜찮다.

조문가서 삼가할 일
장의 진행에 불편을 주고 유족에게 정신적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유족에게 계속 말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
반가운 친구나 친지를 만나더라도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지 말고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하고 조문이 끝난 뒤 밖에서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한다.
고인의 사망 원인, 경위 등을 유족에게 상세하게 묻지 않는다.

조문 절차
1) 외투는 대문 밖에서 벗어 든다.
2) 상제에게 목례
3) 영정 앞에 무릎꿇고 분향
4) 향나무를 깎은 나무향이면 왼손을 오른손목에 바치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향을 집어 향로불 위에 놓는다.
5) 만수향과 같이 만들어진 향(선향 : 線香)이면 하나나 둘을 집어 성냥불이나 촛불에 붙인 다음 손가락으로 가만히 잡아서 끄던가 왼손을 가볍게 흔들어 끈 다음 두손으로 향로에 꽂는다.(절대로 입으로 끄지 말 것).
6) 선향은 하나로 충분하며, 여러개일 경우 모아서 불을 끄더라도 꽂을 때는 하나씩 꽂아야 한다.
7) 영정에 재배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상제에게 절을 하며, 인사말을 한다.

인사말
- 상제의 부모인 경우 : "상사에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 상제의 아내인 경우 : "위로할 말씀이 없습니다"
- 상제의 남편인 경우 : "상사에 어떻게 말씀 어쭐지 모르겠습니다"
- 상제의 형제인 경우 : "백씨(伯氏) 상을 당하셔서 얼마나 비감하십니까"
- 자녀가 죽었을 때 그 부모에게 : "얼마나 상심하십니까"

조위금
- 조위금(弔慰金) 전달 조위금 봉투에는 초상의 경우 '부의(賻儀)'라 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그밖에 '근조(謹弔)', '조의(弔儀)', '전의(奠儀)', '향촉대(香燭臺)'라고 쓰기도 한다.